4월 2주차 주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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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10.

딱히 씰을 열심히 모아야 하는 이유는 없는데 모으다 보니 오기가 생겨 계속 빵을 먹고 있다. 그런데 분명 지난주도 금요일에 저 씰이 나왔던 것 같은데... 금요일에 당첨되는 씰인가?

 

 

전날 술을 마셨지만 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급하게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 와 혼자 회의실에 앉아 먹는다. 시끌벅적하게 모여 먹는 것보다는 혼자 먹는 게 훨씬 편해졌다. 회사 인원이 늘어나면서 대규모로 움직이게 되는데 누군 어디가 싫다, 누군 저기가 싫다 하다 보니 결국 가는 식당만 가고 눈치 보여서 어딘 가자고 얘기도 못 하고...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니 이젠 그냥 혼자 먹는 게 낫다.

 

 

오후 내내 회의에 시달리다 퇴근 1시간 전 초집중해서 일을 마쳐놓고, 친한 회사 아가씨와 함께 퇴근해 지하철에 오른다.

 

 

그 언젠가 함께 먹었던 치킨을 먹고, 먹는 도중 퇴사한 동생도 합류.

 

 

2차엔 어디로 갈까 동네를 돌다 보이던 허름한 실내 포장마차에서 간단하게 술을 또 마시고 귀가.

 

 

그저 그런 하루. 함께 술을 마신다고 딱히 즐겁지도 않았다. 그냥 혼자 마실 걸 그랬나 보다.

 

 

2020.04.11.

5시에 눈이 떠졌다. 더 자려고 했지만 정신이 너무 말짱해졌다. 라디오를 켜놓고 노래를 듣다 6시가 가까워져 일어나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눈물을 닦아내고 모자와 마스크로 무장 후 밖으로 나선다.

 

 

투표소에 도착한 시각은 6시 정각. 이미 투표소는 열린 상태라 내 앞으로 10명 정도가 줄을 서 있었다. 사전투표 열기가 대단하다더니 이렇게 이른 시간에도 와서 줄을 잠깐이라도 서야 하다니.

손소독제로 소독 후 비닐장갑을 받아 착용, 이마에 열 체크, 1미터 간격으로 줄 서기, 신분증 확인, 이름 서명 확인, 투표용지 발급, 투표. 간격을 두고 줄을 서야 하기 때문에 사람이 몰리는 시간이 아니더라도 줄이 꽤 긴 것 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소신껏 투표를 마치고 나온다.

 

 

해가 뜨고,

 

 

달이 지는 시간. 라디오 볼륨을 다시 높이고 집으로 돌아간다.

 

 

9시 반까지 누워있다 일어나 씻기 시작하니 엄마가 도착한다. 실비 보험 신청을 대신 해주기로 해서 제출할 서류들을 가지고 집으로 오신 것이다. 웹사이트에 공인인증서 등록 등 복잡한 절차를 진행하느라 시간을 많이 잡아먹어 우선 로그인 해서 접수할 수 있게 환경만 만들어놓고 엄마와는 빠이빠이. 며칠 전 인센티브를 받은 것 중 일부는 엄마에게 송금해 드렸다.

11시 반에 예약해놓은 미용실. 예약시간에 가도 늘 2~30분은 기본으로 기다려야 한다. 이럴거면 그냥 오픈 시간에 맞춰 예약을 할 걸 그랬나 싶기도 하다.

이 부시시한 머리를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 결국 싹둑 잘라낸다. 원장 양반의 가위질 소리가 유난히 경쾌하다. 세심하게 컷트를 마치고 돌돌 말아 완성.

3시간이 지나서야 미용실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집에 잠깐 들러 지갑과 장바구니를 챙겨 들고 나와 마트를 가기 전에 검색해 둔 암장에 들른다.

친구들과 함께 클라이밍을 하고 싶지만 군자역까지 다니기엔 너무 멀어 집 근처에 있는 암장에서 혼자서라도 운동을 해야겠다 싶어 결정. 집에서는 걸어서 7~8분 정도 거리라 크게 무리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다니는 곳에 비하면 규모가 작았지만 기본적인 운동 기구가 갖춰져 있어 기초 체력 다지기는 좋아보여 다니기로 한다. 직원분에겐 등록하는 날 와서 바로 운동 시작하는 게 가능하냐고 묻고, 그렇다는 답을 받아 다음에 뵙겠다는 말을 남기고 빠져나왔다.

 

 

밖으로 나와 마트로 슬슬 걸어가 입구에 거의 다다르니 걸려오는 아빠의 전화.

'딸내미. 어디니?'
"응. 영등포."
'약속있니?'
"아니. 마트왔어. 이마트."
'삼겹살 먹자.'
"그래? 그럼 나 마트왔으니까 내가 고기를 사 갈까?"
'아니. 고기는 아빠가 살게.'

오전에 엄마가 왔을 때 파채 썰어주는 기계를 샀다고 보여주며 자랑했는데 그게 생각이 났는지 아빠와 전화를 끊고 곧장 엄마에게 전화가 와 파채를 썰어오라는 명령(?)을 받는다. 마트에서 대략 필요한 것들을 구입하고 장바구니 이벤트 금액을 아슬아슬하게 맞춰 획득. 안 사려고 했는데... 결국 이렇게 참여했으니 끝을 봐야겠다.

 

 

장본 것들을 정리하고, 청소를 한 후 파채를 썰고, 상추와 깻잎을 씻어 본가로.

 

 

홍매화가 활짝 피었던 옆 나무는 흰색 라일락. 봄엔 라일락 향이 진하게 번지는 게 참 좋다.

 

 

향기 가득한 작은 텃밭.

 

 

아빠가 사진을 찍어야 한다며 상 위에 놓아둔 과일은 핀잔을 듣고서야 상에서 치웠다.

 

 

배불리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날이 쌀쌀하다. 으슬으슬 추워져 빨리 뜨거운 물에 몸을 담궈야겠다 싶어 택배로 받은 접이식 욕조를 뜯어 조립을 한다.

(시국이 시국이니 만큼 사우나를 갈 수 없는 여건이라 구입해봤다.)

 

 

나같은 사람이 들어가기 딱 좋은 크기. 물을 받아보니 물도 꽤 많이 들어간다. 뚜껑을 닫으면 반신욕하기 딱 좋은 상태로 온도가 유지된다.

 

 

욕조 안에 의자도 있어 엉덩이 아픔을 방지.

 

 

다음에는 입욕제를 사다가 해봐야겠다.

씻고 나니 목욕탕에 다녀온 것 같은 기분. 진한 우유같은 걸 마셔줘야 했지만 생각해보니 아침에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뜨겁게 캡슐 커피를 내려 커피를 한 잔 한다.

 

 

커피를 마시며 TV를 보다보니 뭔가 허기가 진다. 먹기는 먹었지만 들락날락하느라 진이 빠진 상태. 또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편의점에서 맥주 4캔과 굿다리를 구입해 온다. 1캔만 마시려고 했지만

 

 

그건 쉬운 일이 아니다.

 

 

요즘 보는 드라마를 정주행 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놓고 잠을 청한다.

 

 

2020.04.12.

2시에 잠들어 7시에 눈을 떴지만 지난 주말에도 이렇게 자고 일어나 활동을 했더니 일주일 내내 출퇴근이 힘들었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눈을 감고 누워있었다. 그러다 시계를 보니 10시 반. 일어나 오랜만에 드립 커피를 내려 한 잔 마신다.

 

 

밥을 먹고 씻는 중 왼쪽 눈에 뭔가 들어갔는지 계속 아프다. 1시간이 지났지만 아픔이 지속되어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간다. 집을 나서기 전에 미리 영업중인 약국을 검색해 동선을 짰다.

인공눈물을 구입하고, 슈퍼에 가서 카레를 만들 재료를 구입한다. 혹시 몰라 새로운 빵이 동네에 들어왔나 편의점에 들르니 있다.

 

 

회사에 가져갈 빵들을 구입하고, 간식으로 마카롱을 먹는다.

 

 

자이언트는 자이언트군. 크림에 레몬이 들어갔는지 상큼한 맛이 난다.

 

 

겨울 옷을 정리하고, 봄 옷을 걸어 놓았다. 드라이 클리닝을 맡겨야 할 외투들은 세탁소가 쉬는 날이라 평일에 맡기기로 하고 일단 놔두었다. 정리를 할 때마다 느끼지만 무슨 옷이 이렇게 많나 싶고, 결국 이번 시즌에도 입지도, 버리지 못 하고 싸매고 있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어차피 놔둬도 안 입을 옷이잖아? 다음주에 2차 정리를 하면서 다시 추려봐야겠다. 버릴 옷들을 쌓아놓고 보니 그래도 비싸게 주고 산 옷도 있어 아깝기도 했지만 미련없이 정리.

카레를 만들고 밥에 끼얹어 먹어야 했는데 오랜만에 파스타가 먹고 싶어 면을 삶아 카레 소스에 시판 토마토 소스를 섞고, 파스타 면을 넣어 졸인다. 맛은 있었는데 면수에 소금을 너무 많이 넣은 건지, 양념이 조금 짭짤했던 건지 짰다. 하지만 다 먹었다.

 

 

쓰레기를 버리고, 청소를 마무리 하고, 샤워 후 손톱을 깎는다. 2주에 1번 깎는 것 같은데 이번엔 3주 정도 된 것 같다. 이 정도로 기를 동안 걸리적 거릴만도 했는데 잘 참았네. 손톱을 깎으면 일주일을 마무리하는 느낌과 새로운 주간을 시작하는 기분을 잘 정돈할 수 있다. 네일케어도 받을만 한데 20대에 많이 해봐서 이젠 그다지 관심도 없다.

생긴대로 살아야지, 꾸민다고 다 예뻐지는 건 아니더라고.

 

 

오후 내내 괴로웠던 왼쪽 눈은 가만히 놔둔지 4시간 정도 지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 정상으로 돌아왔다. 걸리적 거린다고 건드리면 더 상처가 벌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였나. 인공눈물을 너무 넣은 탓에 좀 더 뻑뻑해진 것 같은데 일단은 더 이상 아프지 않으니 그걸로 다행이다 싶다.

형편없이 시간을 보냈던 지난주에 비해 이번주엔 집안일을 집중적으로 많이 처리한 것 같아 약간 뿌듯하다. 약간.

냉수나 한 잔 하고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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